다섯 가지 제목의 위험한 기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전에, 우리 교회의 종파의 사절단을 목사들에게 보낸다는 뉴스레터를 읽고 있었습니다. 뉴스레터의 부분이 기도의 내용으로 할당되어 있었는데, 제목이 { 하이벨즈의 다섯 가지 제목의 위험한 기도}이었습니다.

기도의 대부분은 (me) 중심이 되는 주님의 옥좌를 나타내고 있었고, 하이벨즈는 다섯 가지 단어를 나열했습니다. 다섯 가지의 단어들은 나로 하여금 우리의 기도생활과 하나님에게로의 관계를 바꿀 있게 한다고 믿게 하였습니다.

내가 다섯 가지의 "(me)"라는 단어를 연구했을 , 나는 단어들이 하나님의 존재로 향한 일종의 탐험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나의 생명과 복음을 위해 내가 주님의 의지를 찾고, 완전히 그에게 나를 맡기는 도전이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이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그와 다른 자들에 대한 생각과 동기를 드러내게끔 되었습니다. 안에서 신령함과 헌신, 그리고 주님과의 친밀함에 대한 새로운 열정이 일어났습니다.

다섯 가지의 "(me)" 로마서12 말씀과 접속되어 깨달음을 줍니다. 마음으로부터 기도 드리고, 행동으로 옮겨졌을 , 우리는 살아있는 희생물이 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하나님에 의해 그의 목적과 그의 기쁨을 위해 쓰임이 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나를 살피소서(Search Me)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편 139:23,24)

"거의 모든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적이 많습니다. 다윗은 느낌을 시편139장에 표현하였지만, 갑자기 그는 그것을 멈추고 하나님께 그를 시험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같은 식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혼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을 지적하시도록 요청해야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다윗의 눈물은 오늘날의 많은 교인들이 흘리는 것과 그리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향해 노래를 부를 ,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바람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위대한 이스라엘의 왕의 운명은 하나님을 따르도록 정해져 있었으며, 그렇게 때에 그는 그의 속에 죄악과 같은 모든 것들은 없어져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주님과 그의 말씀에 대해 많이 알게 될수록 내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에 대해서 많이 깨닫게 된다는 것이 나의 경험이었습니다. 내가 그의 신령의 빛에 가까이 갈수록, 많이 성령님이 내가 완전히 바치지 못한 삶의 주위를 돌아보게 하시게 합니다.

시편139편에 있는 다윗의 말들은 속삭임의 마음으로부터 넘쳐 나옵니다. 믿는 자들을 위해, 찬양은 문을 마음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향해 열립니다. 그로 인해 우리의 초점은 얼마나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지, 얼마나 우리가 그를 필요로 하는 지에 맞추어 집니다.

찬양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의 사랑에 응답하게 하여줍니다. 야고보서 48절의 말씀은 우리에게"하나님을 높이라 그러면 그는너희를 높이리니"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어떻게 그렇게 있을까? 나는 경험으로 이러한 것이 내가 찬양 드리는 동안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찬양하는 동안에는, 내가 드리는 예배의 부분은 대개 하나님이 자신을 신령의 선물을 통해 증거하시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그의 존재를 많이 갈망하는 기독교인들은 찬양으로 감동 받습니다. 음악은 이상 즐거움을 위한 쇼가 아니라, 하늘의 왕실로 향하는 매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숭배의 구체적 표현과 말들은 어떠한 종교적인 제사를 지내기 위함이 아니라, 중의 왕이신 주님을 위한 그들의 극적인 사랑과 숭배를 나타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예수님께로 이끌려져 있기에, 그들은 계속적으로 그를 찬양하는 것에 방해되는 일들을 끊임 없이 알게 입니다. 찬양하는 자들은 그의 목소리와 그의 손길에 민감하여서 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훼방하는 것은 어떠한 것도 참으려 하지 않을 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솔로몬의 것과 같습니다.

"바위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얼굴을 보게 하나 소리를 듣게 하나 소리는 부드럽고 얼굴은 아름답구나. 우리를 위하여 여우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아가 2: 14. 15)

주님에게 있어서, 찬양하는 자는 그루의 포도나무 입니다. 요한복음15:1 – 8 절에 나오는 포도나무와 같이, 하나님의 안에 있는 포도나무는 양성되어질 있고, 그를 영광스럽게 하기위해 사랑으로써 가지 치움을 당할 있습니다. 영광은 포도나무가 제철에 맺는 부드러운 과실로부터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또한 마태복음13장을 보면, 우리의 삶은 과실을 맺도록 전적으로 바쳐져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직함이나 학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쌓아온 업적이나 우리가 받은 상에 기초를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과실이며 우리를 통해 내려온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이고 본질이십니다. 우리가 그에게로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영광이 점점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 우리를 위하여 여우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아가2:15)

솔로몬이 말하고 있는 것은 " 여우들을 쫓아내라. 작은 죄들과, 우리가 간과하거나 변명으로 피하려 하는 부패들을. 우리로부터 그리스도안에서 성숙함을 빼앗아가는 부정행위와 범죄들을..

그들은 하나님과 우리들의 교제를 훔쳐갑니다. 그들은 우리의 눈과 판단능력을 흐리게 합니다. 우리의 귀는 그의 목소리의 달콤함에 무뎌집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기회를 가질 있도록, 그들은 반드시 노출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진실한 찬양은 마음 깊은 곳에 전달되어야만 합니다. 다시 한번, 야고보서 4장을 보면 우리는 신실함으로 주앞에서 우리자신을 보이도록 권고를 받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말하기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야고보서 4:8-11)

나를 깨우소서(Break Me)

" 당신은 깨침을 요청할 때까지 사람의 크리스챤으로서 성장할 없습니다. 당신의 정신적 성숙함의 정도와 상관없이,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작용하는 범위가 있기 마련입니다." (빌하이벨즈)

믿음이 깊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안겨준 며칠사이에 Church of Jesus Christ교단에서는 이단적인 현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또는 때로 죄를 깨닫는 것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느 일요일 크리스챤 네트워크에서 방영되는 교회의 예배를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는 예배가 끝날 초대의 말과 함께 교회의 믿음에 관해 설명을 하면서 시청자들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중에 한가지 나의 영혼에 충격을 것이 있었습니다. 그가 시청자에게 "당신은 지옥불에 관한, 지옥의 유황에 관한 메시지를 설교단에서 다시는 듣는 일이 없을 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악에 대해서 걱정할 없다. 우리가 오직 이야기 것은 하나님의 긍정적인 면이다. 이것은 균형이 맞지 않는 메시지로 하나님은 이것을 추악한 일이라고 지적하고 계십니다.

70년대 , 나는 강림교 종파가 아닌 교회의 청소년부 목사였습니다. 우리 그룹은 천문12궁의 징조와 별자리 점에 관해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룹에 있던 소녀가 어떤 식으로 매일매일 신문에서 별자리 점을 보는지 얘기 했습니다. 그녀는 질문을 당하고서는 그것들을 진짜로 믿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것은 단지 심심풀이 였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외치고 있었다, 일종의 마법을 깊이 탐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마술을 깊게 탐구하고 있던 거라고 들었을 , 그녀는 우리가 지금 은혜 속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은 구약에서 자신이 행한 것과 같은 죄는 관여하지 않으신다고 외쳤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에 대처하지 않을 것이라면, 혹은 우리가 하나님이 얼마나 죄악을 싫어하시는 지에 대해 어떠한 형태로든지 잘못생각을 하고 있다거나, 또는 우리가 자비를 죄악의 핑계거리로 잘못 사용하거나 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됩니다.

우리의 불복종은 하나님을 몹시 화나게 만듭니다. 우리의 반항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가까워짐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그의 신부라고 언약하고 다른 연인과 함께함으로써 하나님을 등지고 부정을 저지르겠다고 말할 있겠습니까?

어느 목사는 회중에게 어찌하여 사람에게 있어서 경배와 찬양하는 것이 그리 힘든지에 대해 설교를 하면서 정곡을 찔렀습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사이에 우리는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속세로 가득차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HBO, TMC, Cinimax, MTV, 그리고 드라마 등으로 가득차게 하여 우리의 가슴은 점점 무뎌지고 딱딱해져 가는 것입니다.

야구, , 그리고 사교행사 등은 주중에는 성경공부나 기도를 제치고 우위를 차지합니다. 우리가 일요일 아침에 교회에 오면, 우리는 우리의 손을 들고 어떤 찬양이나 경배를 외치지만, 그것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늘나라는 놋쇠그릇처럼 그토록 값어치 있는 것이지요.

이것에 어떤 의혹이라도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와 하나님의 보좌사이에 벽을 만들어왔고, 우리는 그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안에 있고, 그것이 우리를 그의 존재로부터 갈라놓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망과 어둠을 당연시하여 왔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대답을 갈구하지도 않습니다. 만일 어떤 이유로 아내가 나에게 얘기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런지 알고 싶을 겁니다. 나는 내가 어떻게 행동해왔었는지를 찾아내고 싶고 상황을 고칠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의향이 있을 입니다. 이유는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다음으로, 그녀는 나의 인생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는 우리 관계를 걱정하며 바깥에 있으면서 안을 들여 보기만 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여러 마음이 상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나의 행동이나 나의 말이 그녀를 다치게 하고 마음 아프게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울면서 그녀에게 용서를 구한 적이 여러 있습니다. 그녀는 항상 나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의 관계에 틈새를 일으키는 일들을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녀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부드러운 마음은 아플 때가 있는데, 그때는 마음이 하나님을 화나게 했다는 것을 알게 입니다. 이러한 마음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있는 마음을 방해하는 것들을 나타나게 하도록 요구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조건 없는 용서를 받는 신앙인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가 회개의 단에서 만나시는 사람들입니다.

"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8)

예수님은 그를 구하는 마음이 있고 하나님을 화나시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과 멀리 있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아픔과 상심을